교가는 학교의 상징이며,
학생들을 한 마음 한 뜻으로 다스려 교육하는 목적이 있지요.
운동시합, 그리고 각종 학교관련 집회 등에서 불려지는 노래이며
졸업 후에도 잊지 않고 어쩌다 부르게 될 때도 있지요.
이런 교가를 지은 이들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청주고 교가는 작사자 김 백하(청주고 45회 졸업앨범에 나타난 것)로 알고 있으나,
청주고 홈페이지에는 이 백하로 되어 있어 앨범작성이 잘 못 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작곡자로는 김하경 교수(청주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교수 역임, 작고)로 되어있습니다.
우선 이백하 선생에 대한 자료 조사입니다.
"청주고의 큰 스승 포암 이백하선생"논문 : 신상구(천안중) 교사
1978년 충북도청에서 포상받으시는 선생님.
그의 조부인 오당 이상수 선생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시문과 교육방법론에 능한 조선시대 말의 대학자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1899년 충남 천안 성남면 석곡리 태어나 한문학과 역사학에 조예가 깊으셨으며,
그는 천직인 오송보통학교 교사직마저 미련 없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면서 성남면의 유림(儒林) 대표 자격으로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
지난 85년 타계한 이백하 선생은 3.1운동 당시 유관순이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할 때
구국동지회 명의로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배포.
1년 6월 옥고를 치름. 90년 국민훈장 애족장 수여받고, 대전 현충원국립묘지에 안장.
충주중과
청주여중, 청주고(1949, 6월~ 1961년 2월) 등에서 15년간 재직해온 이백하 선생은 청주고의 교가를 작사하시고
1955년 교감자격을 취득하였으나, 학생들을 가르치시길 원하여 평교사로 정년을 마침.
작곡가 : 김 하 경 교수.
일제시대 현대음악(피아노)을 공부하시고 청주지역에서 음악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셨으며,
청주대학 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서 후학들을 교육.
다수의 학교 교가를 작곡하셨으며,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서 정년을 맞아 정리를 하신 후 오창 고향으로 은퇴하다.
지금 대성동 주택은 제가 인수하여 1997년 재축한 관계로 마당 한켠의 참나무 아래 현관 화강석 댓돌과
인조콘크리트 의자만 보존되어있다.
재축하기전 기와집ㅁ모습.
참나무 밑의 의자(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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