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추워지니 어릴적 소죽 끓이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소가없으면 농삿일을 못하니 여느집 없이 보물1호였다.
사람은 굶어도 소는 꼭 먹이던 시절...
똥바가지 덮어쓰고 총싸움하고 긴 칼 옆에차고 칼싸움하며 놀다가도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리고 집집마다 저녁 밥 짓는 연기가 피어 오를때쯤이면
소죽 끓이는 담당은 대부분 우리들 몫이라 누가 시키지않아도 소죽을 끓이려 집으로 갔었지.
우선 짚빼까리에서 낟가리 서너단 빼고 고구마 쭐거리 조금하고 갖고와서
작두로 썰은 여물을 소죽 솥에 넣고(이놈의 작두에 손가락 잘린 사람이 마을마다 몇몇은 다 있었지)
콩깍지에다가 등겨 조금가져와 여물위에 뿌리고 부억뒷문에 엄마가 설겆이며 쌀 씻은 물을 모아둔
구정물을 소죽솥에 붓고는 불을때기 시작하지...
요즘 산에 가면 낙옆이 쌓여 침대쿠션 저리가라지만 우리 어릴적에는 조석(朝夕)으로 산에가서
나뭇잎을 긁어왔기 때문에 왠만한 집 마당보다도 더 깨끗했었지.
특히 소나무 잎은 솔깝이라해서 제일 인기가 많았지.
그 솔깝 불쏘시게에 다왕(성냥)으로 불 붙여 산에서 베어온 물거리를 무릎으로 툭 분질러
밑불 만들어서 장작에다 불을 붙여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지.
코를 땅에다 처박고 후후 불어가며 지극정성을 다하는데 어쩌다 마파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연기를 덮어쓰고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어찌어찌해서 장작에 불이 붙고 불과의 전쟁이 끝나면 그때서야
옆에 갔다놓은 제 덩치보다 큰 밧데리를 고무줄로 엮어 업은
라디오를 켜고 그때 인기 좋았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를 들었지....
통나무 장작이 거의 다 타고 알불이 되어갈쯤 소죽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그때는 그 냄새가 어찌그리 구수하던지...
어질러진 아궁이앞을 빗자루로 쓸어 불씨가 날리지 않도록 깨끗이 청소하고
알불에 고구마를 넣고 구워 먹으면 그 맛이란 지금 먹어도 맛있지

저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얼마나 구수한지 군침이 꼴깍 넘어간다.
소가 일을 많이 하는 철에는 영양식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겨울철 해거름에 아버지께서
아들아 쇠죽 끓여라하고 말씀하시면
나는 물지게에 양동이를 걸고
동네 앞 시냇물을 길어
커다란 가마솥에 붓고
여러 가지 영양가 있는 것들로 만들어진
여물을 넣고 구정물을 붓고
가마솥뚜껑을 닫는다.

쇠죽 솥에 수수하고 콩도 넣어 삶아 먹으면 맛있다.
아궁이에 잘 마른 솔깨비를 넣고
그 위에 작은 나무 가지를 올리고
곽 성냥 통을 찾아 불을 붙인 후
불씨를 살리기 위에 아궁이에 고개를 묻고
연신 후후 불어보지만 매운 연기 때문에
눈물, 콧물은 얼굴에 범벅이 되고
캑캑 나오는 기침 때문에 맥을 못 추지만
그 정성으로 불씨는 살아 춤을 추기 시작한다.
불이 붙으면 나뭇간에 쌓아 둔
장작을 한 아름 안고 와
하나하나 아궁이 안으로 밀어 넣으면
불은 금새 활화산처럼 활활 타올라
아궁이 안을 시뻘겋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내 온몸을 휘어 감는다.

집 뒤편에 우뚝 솟아있는 굴뚝이
아궁이 안의 불길을 사랑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가슴에 안고
정열적으로 키스를 하여 그 열기로
가마솥의 물을 데우고
구들장을 후끈후끈 달아오르게 한 후
그 사랑의 흔적을 연기로 내어 뿜는다.
아궁이 앞에 솔잎을 방석 삼아 앉아
쇠죽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부지깽이로 북채하고 부뚜막을 북으로 삼아
젓가락 장단을 치며 흘러간 옛 노래인
떠나가는 김삿갓, 홍도야 울지 마라,
엽전 열 닷 냥, 신라의 달밤, 꿈에 본 내 고향을
목청 높여 멋드러지게 불러 댄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시간이 흐르면
솥 등에서 하나둘 눈물방울이 맺혀 지고
그 눈물방울이 솥 등을 타고 흐르고
이내 뜨거운 수증기로 한을 토해내
온 천지를 수증기로 물들이면
가마솥 뚜껑을 열어
여물에 간이 잘 베이도록
등겨를 넣어 나무갈고리로 저어
가마솥의 뜨거운 마음을 달래준다.

건너 방 곡간에 쌓아 둔
잘 생기고 통통한 고구마를 골라
칼로 빚어 썬 다음
숯불을 앞으로 꺼내
잘 썰어진 고구마를 던져 넣으면
열기를 받은 고구마는 금새
군고구마가 되어 입에 들어가고
총각김치를 한 입 베어 무니
이것이 바로 내 세상이로구나
쇠죽을 끓이는 맛이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
아 옛날이 그립도다.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온몸을 감싸안는듯 따스함에
잠시 하늘에 태양을 바라봅니다.....!
그때의 태양은
아직 그대로인데....
선명한 그림자같은 추억이 스쳐지납니다.
나무타는 냄새와 소리...
작은 불씨가 어느새 큰 불씨로 변해가고...
소죽을 끊이는 무쇠솥에 모락거리는 김은
차가운 시골의 공기를 따습게합니다.

소죽이 다 끊여질무렵...
무거운 솥뚜껑을 열고 한번을 뒤집게 됩니다..
골고루 익히기위해....^^
이때쯤 되면 미리 준비해둔
고구마나 감자를 장작불의 붉은 영그락에
파 묻어두고 구멍난 양말을 장작불에대고
시린발을 이쪽저쪽 돌려가면서...ㅎㅎ
너무나 맛있는
군고구와 감자의 향기가 코끝에 가득합니다.
입가엔 검은 숯덩이의 고운 색깔로
그림그린듯 색칠을하고
군고구마의 향기에 취한 시골저녁은
저녁노을과 함게 짙어갑니다.
작아진 불영그락은
구멍을 뚫은 작은깡통에 가득담아서
쥐불놀이를 하곤 합니다.
큰 원을 그리듯 작은어깨로 휘감아 돌리는
그 모습은 둥근세상의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 추억을 떠 올리면
어느것하나 설레임이 아닌것이 없습니다.
어린시절의 흔적들...
생각도 어렴풋하고 아련하지만 마음에 남아있는걸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그리운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축들도 거두고, 한겨울에 고무신고 신발이 꽁꽁 얼서서
발에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답니다.

동네 앞산 바위꼭대기마져 그늘이 꼴딱 넘어가고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참새들이 모여 앉아 낮에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느라고 수다를 떨고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소죽끓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도ㅑ지 울청 옆에 있는 도구통에서 꾸정물를 몇 쪼빡 퍼서
솥에다 붓고
여물 조새로 여물을 퍼서 솥에다 옇고 불을 땔 준비를 합니다.
먼저 당글게로 부삭에서 재를 긁어내서 꺼렁지에 담아 통새옆에 뒤엄방죽에 버립니다.
성냥불도 아껴썼던 그 시절에는
검불나무로 불꺼렁지를 만들어 큰방 정재서 불을 담아옵니다.
헣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날리며
달려와 후후 불면 불이 살아나고
그 불을 꺼지지않도록
나무를 집어너야 합니다.
비땅으로 살살 뒤적거겨 가면서
나무를 집어 넙니다.
비땅에 불이 붙으며 여물담은 솥단지 속으로 푹 집어넣어 불을 끄고
찌드러란 물거리 나무는 물팍에 대고 뿐질러서 넙니다.
픽픽 연기를 품는 참나무
누런 물이 나오는 옻나무
퍼런 불이 나오는 소나무
그래도 이케 바람 안부는 날은 불땔만 합니다.
마파람이라도 피는 날에는
기뚝으로 바람이 들어가서
기컷 잘 타던 불이 꺼지고 연기가 꺼꿀로 기어 나오면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짚으로 엮은 똥그란 맷방석에 엎져서 눈 물 흘리고

고래구녁까지 나무를 짚이 너야 아랫묵이 따숩기 때문에
비땅으로 나무끝을 잘 맞춰 밀어너야 합니다.
여물 담은 솥단지 에서 짐이 모락모락 나기 시작하면
암탉이란 장닭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먼저 암탉이 고개를 기웃 기웃 하면서
새나꾸로 엮어놓은 사다리를 날개를 퍼득거리면서 올라갑니다.
다음은 장닭차례입니다.
이 놈은 사다리를 타지 않고 바로 날아서 올라갑니다.
푸다다닥 날아 오르는 날개 바람에 불이 훨훨 더 잘타고
짐이 나지 않는 지루한 날에는 비땅으로 여그저그를 쑤셔갖고 꾀도 부려보고
불이 잘 타고 기분 좋은 날에는
비땅으로 장단 맞춰감서 노래도 부르고
여물 조새로 뒤적여 잘 섞은 다음
지푸락으로 엮은 소두랑뚜껑으로 덮으면 소죽끓이기는 끝나 갑니다.

오랜만에 감자꽃도 보고 그 감자밭에 앉아 이렇게 ㅎㅎ
소죽과 어머니
풀향기
하얀 눈 내리는 겨울
사랑채에서
소죽 끓여내는 어머니
장작 타는 아궁이 앞
가시 손
더덕더덕 매운 연기 만큼이나
가난의 얼굴 녹이며
무쇠 솥
들썩이는 눈물로
어머니의 설움 토해
누런 황소
고삐 틀어 외양간 떠나던 슬픔
불타는 자식의
학문 위해 기둥뿌리 뽑은
가슴의 응어리,
불기둥에 끓여내는 간절함이
수증기 포자 터트려 한없는 사랑 가슴 가득 채우신다.

▲ 소죽 끓이고 밥하고 군불을 때면 아랫목은 절절 끓고

▲ 정지 라고 부르던 곳 서울말로 부엌
쇠죽을 끓이며 / 정연홍
아버지는 오늘도 쇠죽솥 아궁이에 불 지피신다
마른 솔잎 밑불 만드시고
솔가지 꺾어꺾어 얹으신 후
장작개비 몇 개 던져 넣으신다
매운 연기에 눈물 몇 방울 훔치시고
후후 입부채로 불 일으키신다
어설프게 타오르던 장작도
활 활 온몸을 태우기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것도 저와 같은 것임을
가족 위해 온몸 던지는 가장이 저와 같음을
타오른 불길은
따뜻한 한 솥의 밥이 되고 쇠죽이 되고
구들장 어둠 속 거쳐간 저 불길은
밤새 노동으로
지친 노부모의 허리를 지져 줄 것이다
금세 달아 올랐다가 식어 버리는
현대식 보일러의 그 간사함 보다
은은하고 깊게, 뼈 속으로 스며들어 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저와 같음이 아닐까
기름을 넣어 주어야만 불붙는 보일러보다
장작 몇 개비만으로도 밤새 구들장을 데워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