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나의 가을 앓이....

가래산 2012. 3. 6. 21:54

이 맘때면 늘 떠오르지 않던  국어수업의 그 내용을 찾아내어

끙끙대던 고민을 정리할 수 있어 가을 맞이가 행복합니다.

심지어 연기군 국정교과서 박물관의 6~70년대 국어교과서를 특별열람 신청하여 다 뒤졌건만

찾을 수가 없었지요.

"한 낮의 무더위가 이리도 심하지만 밤이면 귀뚜라미 소리에 가을이 성큼 다가옴을 느낀다"는 내용의 막연이

시조인 줄 알고 회억하였건만 답을 얻지 못하다가 시문학에 조예가 깊고 국문학을 전공한 처제에게

그 고민을 털어 놓았었지요.

용케도 그 고민을 털 수 있는 회답이 왔어요.

 

아래 글  이희승 선생의 수필을 읽으시고 학창시절 국어시간으로 시간여행 떠나보시길.....

 

 

형부, 일본은 잘 다녀오셨는지요.

돌아온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함께 지내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더합니다.

 

청주에서 형부가 말씀하시던 글을 찾았습니다.

시조는 아니고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님의 <청추수제(淸秋數題)>라는 수필이었습니다.

아래에 전문을 실어보내드립니다.

이 수필은 벌레, 달, 이슬, 창공, 독서를 소재로 하여 쓴 글인데,

형부께서 찾으시던 부분은 <벌레> 부분인 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글이라니 아마도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부께서 그리 찾으시던 글이 되길 바라며

이만 총총 하렵니다.

 

 

벌레

 

낮에는 아직도 구십 몇 도의 더위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는다.

 

그런데, 어느 틈엔지 제일선(第一線)에 나선 가을의 전령사(傳令使)가 전등빛을 따라와서, 그 서늘한 목소리로 노염(老炎)에 지친 심신(心身)을 식혀 주고 있다. 그들은 여치요, 베짱이요, 그리고 귀뚜라미 들이다.

 

물론, 이 전령사들의 전초(前哨)역을 맡아 가지고 훨씬 먼저 온 것으로 매미, 쓰르라미가 있지마는, 그들의 소리는 소란한 대낮에, 우거진 녹음(綠陰) 속에서 폭양(曝陽)에 항거하면서 부르는 외침이라, 듣는 사람에게 '가을이다' 하는 기분을 부어 주기에는 아직 부족(不足)한 무엇이 있었다.

 

그렇더니, 이 저녁에 들리는, 정밀(靜謐) 속에 전진하여 오는 소리야말로, '인젠 확실한 가을이로구나!' 하는 영추송(迎秋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게 한다.

 

 

전등(電燈)을 끄고 자리에 누우니 영창(映窓)이 유난히 환하다. 가느다란 벌레 소리들이 창 밖에 가득 차 흐른다.

 

'아!' 하는 사이에, 나는 내 그림자의 발목을 디디고, 퇴 아래 마당 가운데 섰다. 쳐다보아도 쳐다보아도 눈도 부시지 않은 수정(水晶)덩이가, 도시(都市)의 무수(無數)한 전등과 네온사인에 나 보아란 듯이 달려 있다.

 

저 달이 생긴 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를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꼬집고 하였을까? 원망(怨望)인들 오죽 쌓였을라고. 그의 얼굴은 따뜻한 듯 서늘한 듯, 쌀쌀하면서도 다정(多情)도 하다.

 

성결(聖潔)한, 숭고(崇高)한, 존엄(尊嚴)한 그의 위력(威力)에 나는 다시 내 자리로 쫓겨 들어왔다.

 

이슬

 

이슬은 가을 예술의 주옥편(珠玉篇)이다.

 

하기야 여름엔들 이슬이 없으랴?

그러나, 청랑(淸朗) 그대로의 이슬은, 청랑 그대로의 가을이라야 더욱 청랑하다.

 

삽상(颯爽)한 가을 아침에 풀잎마다 꿰어진 이슬방울들의 영롱(玲瓏)도 표현할 말이 막히거니와, 달빛에 젖고 벌레 노래에 엮어진, 그 청신(淸新)한 진주(眞珠) 떨기야말로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할 뿐이다.

 

 

창공

 

옥(玉)에도 티가 있다는데, 가을 하늘에는 얼 하나 없구나! 뉘 솜씨로 물들인 깁일러냐? 남이랄까, 코발트랄까, 푸른 물이 뚝뚝 듣는 듯하구나!

 

내, 언제부터 호수(湖水)를 사랑하고, 바다를 그리워하고, 대양(大洋)을 동경(憧憬)하였던가? 내 심장(心臟)은 저 창공(蒼空)에 조그마한 조각배가 되어, 한없는 항해(航海)를 계속하여 마지않는, 알뜰한 향연(饗宴)을 이 철마다 누리곤 한다.

 

 

독서

 

'서중 자유 천종록(書中自有千鐘祿)'이란, 실리주의(實利主義)에 밝은 중국(中國) 사람에게 있을 법한 설법(說法)이렷다.

 

그러나, '속대 발광 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란 형용(形容)이 한 푼의 에누리도 없는 삼복(三伏) 더위에, 만종록(萬鐘祿)이 당장 무릎 위에 떨어진다기로서니, 독서(讀書) 삼매에 들어갈 그런 목석연(木石然)한 사람이 있을라고.

 

지나친 자아류 (自我流)의 변설(辨說)인지는 모르나, 그러기에 나는 60일 휴가 동안 제법 독서 줄이나 하였다고 장담할 뱃심을 가지지 못하였다.

 

먼 산이 불러나 온 듯이 다가서더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산들산들한 맛이 베적삼 소매 속으로 기어든다.

 

벌레가, 달이, 이슬이, 창공이 유난스럽게 바빠할 때, 이 무딘 마음에도 먼지 앉은 책상 사이로 기어가는 부지런이 부풀어 오름을 금(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