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사- 몫을 받아 보셨나요?
내일이면 내 조상을 숭배하는 시제사날이다.
음력으로 10월이면 해 마다 날을 정해 놓고
기제사와는 달리 5대조 이상의 조상은 1년에 한 번만으로 제사를 모시게 되는데
서양에서는 추수 감사절과 같은 풍속으로 칠면조 요릴 즐기며 수확의 기쁨을 기리게 되고,
추석과는 달리 먼 웃대의 조상을 기리게 됨을 시제사라 일컫는 다.
어릴적 추억으로는 이런 내용은 알 수가 없어도
누구네 시제사는 언제고, 대문중, 중문중의 시제사날 정도는 익히 어린 나이 일지라도
알고 있으면서 손꼽아 기다리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러니까, 10월 초하루 부터 보름까지는 적어도 궁핍하던 시절
다양한 먹거리로 군점할 수 있는 행복한 시절이었지요.
대게 오후 3시쯤이면 동네 조무라기들은 언니, 오빠, 누이, 동생등 삼삼오오 무리지어
책보며 보자기들을 들고 시제사를 지내는 집 마당으로 몰려 들게 되고,
시제사가 마무리 된 집에서 마당에 멍석을 펴고는
대개 몰려들 동네 아이들이나 어른들 수를 개념하여 몫을 나누어 펼치게 됩니다.
편 한조각, 은행, 밤대추, 사과배 감 한조각 부침개 한조각, 두부 전, 상어, 약과, 갈납, 다식,소돼지육편등이
바둑판 처럼 나열 되고, 몫 나누기가 끝나면 줄지어선 몫꾼들은 몫 받으러 온 인원 수 대로
보자기에 받아 들고는 집으로 돌아가 펼쳐 놓고 품평을 하면서 맛있게 먹던 풍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온 동네 골고로 몫을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인심의 풍속이지요.
윤달이 낀 해는 요즘 처럼 눈발이 날리거나, 오싹해진 찬 바람속에서도 빠지지 않고 몫 받으러
인원 수 하나라도 늘리기 위해 코흘리게 동생들을 업고 나섰지요.
이러한 풍습은 농경시대의 유산이었는데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70년대 부터는
몫 받으러 다니는 일이 사라지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졌지요.
힘들게 농사 지어도 함께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나눔의 축제라할 수 있었는데....
시제사 참여 인원도 해마다 점점 줄어 가고, 풍속은 잊혀져 가는 것이
새로운 문화와 변화의 바람을 막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