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절 추억의 보따리

호죽기를 아시나요?

가래산 2012. 8. 28. 21:06

전쟁은 인류역사상 피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하고 이어져 왔지요.

그래요, 나 자신 6.25전쟁중에 태어나 그 영향을 받고

자랐으니 당연히 유년시절의 기억을 어느 일정부분 할애하고 살아왔지요.

호주 여행길에서 가이드(안내자)의 멜버른 시내관광시 전쟁추모관 방문 때에

들은 이야기 이지요.

호주는 당연히 6.25참전국이었고 변변한 공군시설이 없던 때에

미군보다 제일먼저 전투기 파견과 공습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답니다.

지상 아주 낮게 날아가는 그 위용은 그야말로 귀를 째는 듯한 굉음이었지요.

일명 쌕쌕이라 하였지요.

그리고 호죽기라고 불렀답니다. 

코흘리게 조무라기들은 귀를 막고 ---- 호죽기 간다--- 이렇게 외치곤 하였답니다.

그 유년시절에 쓰던 단어 "호죽기" !

머리속에 잊고 있던 단어가 오스트랠리아 멜버른 전쟁박물관 방문에서 듣다니!

갑자기 유년시절이 떠오르는 감회에 어쩔줄 몰라 하였지요.

우리가 6.25전쟁하면 미국만 떠올리지만 이렇게 미국외에 15개나라 보은의 국가가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살아왔지요.

호주의 주력기는 영국제 미티어 MK-8였답니다.

 

다음은 카페 사사작가 남성원님의 세상사는 이야기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호주는 사방이 대양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환경에 맞춰 20세기 초부터 해군과 공군력을 집중 육성해왔다.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 전투기가 호주 연안에 폭격을 가하자 호주는 즉각 공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자 호주는 영국․인도․뉴질랜드 군과 함께 영연방점령군의 일원으로 일본에 진주했다.
전체 4만 5천여 명의 영연방군 가운데 호주군은 1만 6천 명으로 가장 많아 주둔군 사령관을 독점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호주공군 77대대는 6월 30일 한국에 도착, 미 5공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77대대는 수송기 및 폭격기 호위, 3․8선 이북 초계, 북한 지상군 공격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한반도 전역에 ‘호주기’의 명성이 자자하게 된 것이다.
주력기인 P-51 무스탕기를 압도하는 중공군의 Mig-15기가 출현하면서 많은 조종사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Mig-15기는 최고속도, 최고도 상승시간, 방향전환 등에서 당시 세계 최고였다.
호주공군은 즉각 미제 무스탕 대신 영국제 미티어 MK-8기로 대체했지만,
미티어기의 성능 역시 Mig-15기에는 미치지 못하여 크게 패한 뒤 엄호 및 비행장 방어 임무에 주력했다.
호주공군 77대대는 참전부터 1954년 7월 휴전에 이르기까지 조종사 41명이 전사하고 ‘호주기’ 58대를 잃었다."

 

추모관에 들어가 묵념으로 전몰자들의 희생을 기리며,

코흘리개 시절의 북녘으로 날아가던 일명 쌕쌕이(미국 F-84,영국미티어,무스탕등 통칭)라 불리는 호죽기(호주기)의 귓전 굉음을 떠올리고

 다시 한 번 전쟁의 의미를 되새겨 본 기회였답니다.

 

 

입구 좌측계단 날개벽에 참전지역국가 KOREA라고 새겨져 있다.

 

꺼지지 않는 추모관의 불꽃 성화